PART 4

​호흡 공동체를 위한 공기 과학

영상: NASA

어린이날인 2016년 5월 5일의

미세먼지 농도는 21μg/m3, 초미세먼지 농도는 64μg/m3으로 ‘나쁨’ 수준이었다. 미세먼지와 함께 옅은 황사가 예고되어 있음에도 불구하고 봄 황금연휴를 맞은 가족 단위 여행객들은 전국 곳곳으로 나들이에 나섰다. 특히 이날 전국 야구장에는 11만 4058명이라는 프로야구 역사상 가장 많은 관중이 모였다. LG 트윈스와 두산 베어스가 경기를 벌인 송파구 잠실야구장 역시 만원이었다. 연장까지 이어진 접전 끝에 LG는 채은성의 끝내기 득점으로 두산에 8:7로 승리했다.

서울 시민들이 야구 경기를 즐기기 위해 잠실구장으로 향하던 송파구 상공에는 미항공우주국(NASA) 마크를 단 더글라스 사 DC-8 항공기가 모습을 드러냈다. 이 비행기는 서울시 광진구와 구리시 사이에 위치한 아차산 상공으로부터 남쪽으로 천천히 하강하며 한강과 올림픽공원을 지나 성남시에 있는 서울공항으로 향했다. 서울의 동쪽 지역 하늘을 위아래로 훑으며 땅에 가까워진 이 비행기는 여느 항공기처럼 활주로에 안착하나 싶더니, 지상에서 30m 정도 떨어진 지점에서 다시 기수를 올려 공중으로 떠올랐다. 이상한 비행은 이뿐만이 아니었다. 착륙 직전 공중으로 다시 떠오른 기체는 이번에는 남동쪽으로 기수를 틀어 서울공항에서 20여km 떨어진 경기도 광주시 태화산으로 향했다. 비행기는 상림리에 위치한 서울대학교 학술림 상공에 도착한 뒤, 숲 위에서 빙글빙글 나선을 그리며 솟구치기 시작했다. ‘스파이럴’ 상승을 하던 비행기는 7km 상공에서 회전을 멈추고 오산 공군기지로 날아갔다.

이날 서울과 경기도 상공을 마치 곡예 비행을 하듯이 날아다닌 것은 나사가 보유한 DC-8 기종의 대기 연구용 항공기였다. 200명을 너끈히 태울 수 있는 동체에 승객 대신 스물여섯 개의 기체 분석 장비를 빼곡이 채운 DC-8은 비행하면서 대기 중에 비산된 다양한 화학물질의 농도를 실시간으로 측정할 수 있어서 ‘날아다니는 실험실’이라고 불린다. 극지방의 오존 농도나 대서양의 허리케인 같은 극한 상황의 대기를 연구해온 이 최첨단 비행기가 대한민국 서울 도심에 등장한 것은 국립환경과학원과 나사가 공동으로 실시한 한미공동 대기질 연구(KORUS-AQ: Korea‐United States Air Quality Study)에 참여하기 위해서였다. 한국의 극심한 미세먼지가 언제, 어떻게, 왜 만들어지는지 상세히 규명하려는 이 연구에는 한국과 미국의 130여 개 기관 소속 대기과학자 약 580명이 참여했다. 대한민국 최대 규모의 미세먼지 관측 연구다.

​사진: 서울시 항공사진서비스

한국 미세먼지 중 70%는

산업시설 등에서 직접 배출되는 것이 아니라

공기 중에서 태양빛을 받은 화합물이 반응해 만들어지는 ‘2차 생성 미세먼지’다. 따라서 미세먼지 생성 기작을 충분히 이해해야 예보 모델을 개선할 수 있고, 미세먼지 저감 정책을 과학적으로 고안할 수 있다. 즉 어떤 물질에 정책적 개입이 필요한지 알 수 있게 되는 것이다. 하지만 2018년 정부가 발표한 「미세먼지 기술개발 로드맵」에 따르면 미세먼지의 생성ㆍ변환ㆍ소멸 기작을 규명하는 연구에서 한국의 기술력은 미국이나 중국의 60~70% 정도에 불과했다. KORUS-AQ는 한국 상공의 미세먼지가 어떻게 만들어지는지에 대한 권위있는 지식을 만들어낼 수 있는 대규모 연구였다는 점에서 중요하다. 중국, 일본과 미세먼지 문제를 협의할 때 한국의 입장을 대변하기 위해서도 생성 기작에 대한 연구는 필수적이다. 

 

DC-8을 포함해 KORUS-AQ에 참여한 항공기 세 대는 대한민국의 대기 전체를 거대한 실험 대상으로 삼아 2016년 5월 2일부터 6월 10일까지 총 23회 측정 비행을 실시했다. 5월 5일 DC-8이 수행한 비행 경로 역시 서울 대도시권 상공의 미세먼지를 파악하기 위해 연구자들이 세심하게 계산한 것이었다. 서울 동북부에서 성남 서울공항을 향해 천천히 하강하는 ‘서울 스테레오루트’ 항로는 스모그가 짙게 깔린 도심의 대기를 연구하기 위해 고안되었다. 태화산 부근을 나선을 그리며 상승하는 ‘태화 스파이럴’ 항로는 북서풍으로 인해 남동쪽으로 밀려나는 서울의 대기오염 물질이 고도에 따라 어떻게 분포되어 있는지 파악하기에 적합했다. 연구자들은 또한 DC-8이 훑고 지나갈 송파구 올림픽공원과 태화산 학술림에 지상 관측소를 설치해 공중 측정 결과와 비교 분석하는 실험도 수행했다. 같은 시간과 장소의 공기를 지상 관측과 항공 관측이라는 상호보완적 방식으로 측정함으로써 연구자들은 어느 때보다도 상세하게 한국의 대기 상태를 파악할 수 있었다. KORUS-AQ를 총괄한 나사의 수석 과학자 짐 크로포드 박사는 이러한 다각도의 측정 활동을 통해 연구진이  “관측사상 가장 완전한 공기질의 현황”을 그려낼 수 있었다고 평가했다.

‘서울 스테레오루트’와 ‘태화 스파이럴’이 주로 서울 대도시권의 공기질을 집중적으로 조사하기 위한 것이었다면, 나머지 비행은 이보다 넓은 지역의 공기들이 서로 복잡하게 뒤섞이는 역동적인 과정을 포착했다. DC-8은 서울을 중심으로 제주, 부산, 포항 등에 이르는 하늘길을 다양한 고도로 비행하면서 한반도 전역의 대기 중의 오염물질 농도를 측정했다. 수도권 공기질에 큰 영향을 미치는 경기만의 화학단지와 발전 시설들에 대한 집중적인 조사도 이루어졌다. 서풍이 크게 일어 중국으로부터 공기 유입이 예상되는 날에는 DC-8이 서해 상공으로 출동하기도 했다. 특히 상하이에서 발생한 대기 오염이 강한 바람을 타고 빠르게 유입될 것이라는 기상 예보가 나온 2016년 5월 25일, DC-8은 인천 앞바다부터 상하이 근처 동중국해에 이르는 500여km 거리를 북에서 남으로 비행하는 ‘벽 샘플링’ 조사를 수행했다. 한국의 기상 관측용 선박 ‘온누리호’와 ‘기상1호’는 DC-8이 서해 상공을 가로지르는 동안 바다 위에서 같은 시간의 공기를 측정해 정확도를 높였다. 이렇게 바다의 위와 아래에서 얻어낸 측정 결과는 대기 오염 물질이 국가적, 지리적 경계를 쉽게 뛰어넘어 복잡하게 뒤섞인다는 사실을 생생하게 드러냈다.

 

영상: NASA

KORUS-AQ가

2017년에 발간한 예비종합보고서에는

연구진이 알아낸 중요한 사실들이 적혀 있다.

가장 충격적인 결과는 대기오염 배출원 조사 목록(인벤토리)이 허술하게 관리되어 왔다는 점이다. 연구 기간 중 충청남도 서산시 상공을 비행한 킹에어 항공기는 대규모 화학 공장이 많이 분포된 이 지역에서 기존에 알려진 것보다 몇 배나 높은 화학물질 농도를 측정했다. 연구진은 항공 측정 결과와 모델 실험 결과를 바탕으로 공단 지역에서 배출되는 대기오염물질 배출량이 지나치게 과소평가되었다고 진단했다. 이 지역의 휘발성유기화합물 배출량을 새로 추정하니 기존에 보고된 연간 20,000여 톤의 3배에 달하는 연간 60,000 톤의 화합물이 배출되는 것을 파악할 수 있었다. 대기환경학회장을 역임한 김동술 경희대학교 교수는 이러한 실험 결과를 해설하며 한국의 대기오염 감시망의 문제점을 지적했다. 배출되는 휘발성 유기화합물은 100종류가 넘는데 한국은 그중 25종만 관측해 왔으며 관리대상인 사업장도 매우 적다는 것이다. 어디서 무엇이 얼마나 나오는지를 확인하는 가장 근본적인 미세먼지 대책조차 제대로 수행되지 못하고 있다는 안타까운 사실이 KORUS-AQ를 통해 드러났다.

 

KORUS-AQ 연구진은 미세먼지 질량 분석기로 한반도 상공 미세먼지의 구성 성분을 분석해 국내에서 배출되는 휘발성 유기물질이 미세먼지의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한다는 것 또한 알아냈다. 이러한 측정 결과는 미세먼지를 저감하려면 무엇보다도 다양한 유기물질을 줄여야 한다는 것을 뜻한다. 연구진은 또 유기물질이 오존의 발생에 미치는 영향을 규명했다. 대기 중의 오존은 2차 미세먼지 생성에 핵심적인 역할을 할 뿐만 아니라 건강에 치명적인 영향을 끼치기 때문에 세심한 관리가 필요한 물질이다. DC-8 측정 결과를 바탕으로 시뮬레이션을 수행한 결과 방향성 탄화수소, 그중에서도 건설용 페인트에 많이 쓰이는 톨루엔이 오존 생성에 가장 큰 기여를 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따라서 연구진은 여러 미세먼지 유발 물질 중에서도 톨루엔을 규제하고 관리하는 일이 가장 효율적인 미세먼지 저감 정책이 될 것으로 예상했다.

KORUS-AQ는 또 자동차와 발전시설이 주로 배출하는 물질인 질소산화물이 오염물질 오존과 ‘비선형적’ 관계를 가진다는 사실을 지적했다. 측정 결과 서울 대도시권의 상공에는 질소산화물이 이미 포화된 상태로 과다하게 존재하기 때문에 이를 줄이는 정책은 대기 오염 저감에 즉각적인 효과가 없으며, 심지어 단기적으로 오존을 증가시켜 수도권의 오염도를 악화시킬 수도 있다는 사실을 밝힌 것이다. 물론 질소산화물은 장기적인 공기질 관리를 위해 꾸준히 감축해야 하지만, 대기 오염이 심각한 날에는 저감 대상으로 삼는 데에 신중해야 한다는 것이 연구진의 결론이었다. 이렇듯 직관적으로는 쉽게 이해되지 않는 복잡한 광화학적 과정을 반복적인 관측으로 규명한 KORUS-AQ는 대기 정책을 입안하는 사람들이 참고하면 유용할 다양한 사실들을 알아냈다.

 

그러나 KORUS-AQ가 밝혀낸 사실들은 국내에서 그다지 주목받지 못했다. 2017년 9월 정부가 발표한 미세먼지 종합대책에는 톨루엔과 같은 휘발성 유기화합물에 대한 대책을 찾기 힘들었다. 오히려 이 종합대책의 일부는 KORUS-AQ가 찾아낸 사실과 배치되는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공정률 낮은 석탄발전소 4기의 LNG 등 연료전환 추진 협의”, “노후 석탄 발전 임기 내 폐지 및 환경을 고려한 봄철 일시 가동중단 실시”, “노후 경유차 임기 내 77% 조기폐차 등 저공해화”, “친환경차 보급 확대” 등의 대책은 모두 KORUS-AQ가 과잉이라고 지적한 질소산화물을 줄이는 데에 초점을 둔 대책이었기 때문이다. 한국공학한림원, 한국과학기술한림원, 대한민국의학한림원이 2018년 1월 공동으로 발간한 미세먼지 보고서도 이 문제를 지적했다. “KORUS-AQ를 포함한 기존 국내외 연구에서 수도권은 질소산화물이 과다하게 배출되어, 질소산화물 배출만을 줄일 경우 미세먼지와 오존 농도가 올라갈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나타나” 있음에도 불구하고 질소산화물 배출 저감은 매우 강력하게 추진되는 반면 휘발성 유기화합물 배출 저감 대책은 구체적이지 못하다는 것이다.[16] 미세먼지 정책이 공기 과학 연구의 결과와 다른 방향으로 나가고 있었다.

내 코앞의 공기, 각자도생의 공기가 아니라 한반도의 공기, 호흡 공동체의 공기를 다루는 과학은 비싸고 느리다. LG, 삼성, 코웨이의 공기연구소의 발 빠르고 화려한 연구와 비교하면 투박하기 그지없다. 공동체의 공기를 연구하는 과학은 내 코앞과 내 집 안의 공기를 맑게 지켜주겠다는 식의 매력적인 약속을 내놓지도 못한다. 한국의 하늘과 바다와 땅을 휘젓고 다니며 측정하고 분석해도, 그 결과가 실행 가능한 정책으로 전환되는 과정에는 난관이 많다. 그래서 KORUS-AQ처럼 중요한 대규모 공기 연구도 대중의 관심에서 멀리 떨어져 있다. 개인과 기업이 마스크와 공기청정기로 작은 공기를 다스리는 데에 집중하는 동안 거대한 공기의 문제를 감당하려는 과학과 정책은 방향을 찾지 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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