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RT 1

​두 공기 이야기

2019년 2월 21일,

서울 서대문구 초미세먼지 농도 81μg/m3

구름이 거의 없는 하늘인데도 뿌연 공기가 햇살을 가로막았는지 지하철 2호선 홍대입구역 거리에 그늘이 드리웠다. 일산 킨텍스 전시장으로 가는 시외버스를 기다리며 확인한 고양시 주엽동의 초미세먼지 농도는 64μg/m3이었다. 버스는 공기질 ‘매우 나쁨’인 홍대입구를 출발하여 공기질 ‘나쁨’인 일산 킨텍스를 향해 달렸다. 버스 안 라디오에서 나오는 기상정보에 따르면, 한국 상공의 대기가 정체되어 있는 상태라 오염된 공기가 다른 곳으로 이동하지 못하고 있었다. 앞으로 며칠간 미세먼지는 더 나빠질 것이라고 했다.

 

우울한 공기 예보를 들으면서 찾아간 킨텍스에서는 맑은 공기를 마실 수는 없었지만 맑은 공기에 대한 약속이 전시된 것을 볼 수 있었다. 이날 킨텍스에서 열린 ‘클린 에어 엑스포’는 미세먼지에 대응하는 익숙한 기술과 새로운 기술을 한자리에 모아 놓았다. 공기청정기와 패션마스크처럼 이제 일상에서 흔히 볼 수 있게 된 제품들 사이로 생소하고 기발한 물건들도 제법 나와 있었다. 그중에서도 손가락 두세 개 너비의 펜던트가 달린 목걸이가 시선을 사로잡았다. 목에 걸고 다니는 휴대용 공기청정기 ‘에어테이머’(AirTamer)였다. 거친 성질을 다스린다는 뜻의 영어 단어 ‘테임’(tame)을 공기를 뜻하는 ‘에어’(air)에 붙여 만든 이름이었다. 위험한 공기를 다스려서 부드럽고 온순한 공기로 만들어 주는 기계라는 뜻인 듯했다.   

 

“미국에서 인정받은 특허 정품입니다.” 에어테이머 부스를 지키던 담당자가 자리에서 일어나며 말을 걸어왔다. 부스 뒤에 걸린 플래카드에는 성조기 옆으로 “미국 수입정품”이라는 문구가 적혀 있었고, 에어테이머를 목에 건 백인 여성이 환한 미소를 짓고 있었다. “전기를 쏘기 때문에 빛보다 빠른 속도로 공기 중 오염물질을 제거합니다!” “얼굴 주변에 일 미터 크기의 크린 보호망을 만들어 이동 중에도 미세먼지, 꽃가루, 병원균, 매연, 심지어 바이러스로부터 나를 보호해줍니다.” 담당자는 믿기 어려운 과학 이야기를 동원해서 구경하는 사람들의 주의를 끌려 애쓰고 있었다. 에어테이머 팜플렛을 손에 든 중년 여성과 그 아들로 보이는 남학생이 그 설명을 유심히 듣고 있었다. 각종 공기 제품이 전시장을 가득 채우고 정화 기능을 뽐내고 있었지만, 남학생은 맘을 놓을 수 없었는지 마스크를 벗지 않은 채였다. 에어테이머가 약속대로 작동한다면 이 학생도 집과 교실에서 마음 편히 마스크를 벗을 수 있는 것일까. (2주 후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는 교실에서 마스크를 쓰지 못하게 하는 학교를 비난하며, 학교 안 오염된 공기로부터 자신을 지키기 위해 마스크를 쓸 권리를 요구하는 어떤 학생의 글이 올라왔다.)

한 달 전인 1월 16일,

일산 킨텍스에서 50km 떨어진 경기도 포천에 등장한 공기 기술은 ‘클린 에어 엑스포’나 ‘코리아 빌드’에서 목격한 것과는 사뭇 달랐다. 국립환경과학원의 김정훈 연구사는 과학원이 보유한 미세먼지 감시 드론 두 대 중 하나를 들고 와서 소규모 공장 지대를 향해 띄웠다. 드론은 주변 공기를 흡입하는 펌프와 포집용 비닐봉지를 꼬리처럼 매달고서 공장 굴뚝 위로 뒤뚱뒤뚱 날아가 간신히 자리를 잡았다. 드론이 굴뚝 연기를 비닐봉지에 담아 돌아오자 김 연구사는 자신이 타고 온 개조된 미니밴의 트렁크를 열고 실시간 대기질 분석 장비에 비닐봉지의 좁은 입구를 꽂아넣었다. 그러자 기체 안을 떠도는 에어로졸을 감지하는 스펙트로미터가 굴뚝에서 뿜어낸 온갖 화합물의 이름과 양을 명세서 뽑듯 줄줄이 읊었다. 기준치를 넘는 미세먼지 농도 측정 결과를 들고 공장주를 찾아가 훈계하는 일은 김 연구사와 동행한 지자체 공무원이 담당했다. 미세먼지 측정 드론이 포천에 ‘떴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이 지역의 미세먼지 농도는 하루 만에 28 μg/m3(1월 16일)에서 14 μg/m3(1월 17일)로 내려갔다.

굴뚝 연기로 인한 오염을 측정하는 ‘드론감시반’ 활동은 환경부 소속의 과학 공무원들이 한반도 상공의 대기를 살 만한 상태로 유지하기 위해 수행하는 다양한 감시 업무 중 하나다. 제철소나 발전소처럼 오염물질을 대량으로 뿜어내는 600여 개 시설에서는 굴뚝에 부착된 관측기가 감시반을 대신해 오염물질 배출량을 측정한다. 일산화탄소, 이산화황, 질소산화물 등을 5분에 한 번씩 측정한 값이 규정치를 넘으면 각 권역별로 지정된 ‘굴뚝원격감시센터’로 신호를 보낸다. 이곳에서 일하는 환경공단의 과학자는 상황판을 통해 권역의 대기오염 현황을 한눈에 알 수 있다. 자동차 등 이동수단에서 배출되는 오염된 공기는 각 지자체 로 설치된 대기오염물질 측정망을 통해 감지된다. 이렇게 차곡차곡 수집된 자료는 복잡한 수치 모델링을 거쳐 공기 질의 미래를 내다보기 위한 기초 자료로 쓰인다. 매일 아침 ‘에어코리아 앱’에서 확인할 수 있는 일일 미세먼지 예보도 이렇게 다양한 인간과 센서가 한 땀 한 땀 수집한 정보 덕분에 만들 수 있다. 공기를 담당하는 ‘과학 공무원’이라고 할 수 있는 환경부 산하 기관의 연구자들은 때로는 드론을 대동한 암행어사처럼, 때로는 수많은 굴뚝을 한눈에 내다보는 CCTV 관제요원처럼, 때로는 공기의 거동을 예측하는 기상예보관처럼 일한다.

 

미세먼지에 대응하는 공기 기술이라는 공통점은 있었지만, 포천 공장 지대의 굴뚝을 감시하는 드론에는 ‘에어테이머’처럼 멋진 이름이나 화려한 모델도, 잘 디자인된 전단지도 붙어 있지 않았다. 은밀한 미세먼지 감지 활동은 대단한 홍보나 광고의 대상이 되지 못한다. 오염 대기의 농도를 분석하는 스펙트로미터는 ‘포그머신’이나 최신형 공기청정기의 매끈한 디자인과 비교하면 투박한 모양이었다. 직경 3~7마이크로미터의 물방울이 가져다주는 소소한 상쾌함도 찾아보기 힘들었다. 무엇보다도 오염물질 배출을 감시하는 기술은 경동나비엔의 에어원 시스템처럼 빠르고 간편하게 미세먼지 문제를 해결해줄 것이라고 약속하지 않았다. 미세먼지를 감지하는 기술은 암행어사처럼 조용하게, 관제요원처럼 꾸준하게, 기상예보관처럼 침착하게 공기에 대한 정보를 모으고 분석한다.

영상: 한강유역환경청

에어테이머 부스를 지나서 걷다 보니,

파란 인조 잔디와 빨간 파라솔이 보였다.

파라솔 아래에는 ‘스마트 포그머신’이라는 기계가 있었다. 포그머신은 수돗물을 끌어들인 다음 안개처럼 미세한 물 입자를 만들어내는 펌프식 기계다. 포그머신이 만든 인공 안개는 파라솔의 살을 따라 부착된 니켈 도금 노즐을 통해 밖으로 뿜어져나왔다. 담당자는 이 물방울의 직경이 3~7마이크로미터이기 때문에 물을 뿜는 파라솔 아래 서 있어도 옷이 젖지 않는다고 설명했다. 작은 물방울은 사람의 옷을 적시지는 않으면서 조금씩 증발하여 표면 온도를 낮추어 주는 동시에 미세먼지를 줄이는 공기 정화 효과도 있다는 것이다.

 

‘클린 에어 엑스포’와 같은 날 같은 공간에서 열린 건축박람회 ‘코리아 빌드’에도 공기를 다스리려는 기술이 여럿 등장했다. 거대한 모델하우스를 설치하고 새로운 공기정화 시스템을 시연한 경동나비엔의 부스가 단연 눈에 띄었다. 공기정화 시설에 관심이 많은 건물주들에 둘러싸인 홍보 담당 사원이 ‘에어원’이라는 제품을 열정적으로 설명하고 있었다. 집안 한 켠에 가구처럼 놓여서 그 주변 공기만 정화하는 기존 공기청정기와 달리 에어원 시스템은 천장 내부로 촘촘히 연결된 환기 통로를 활용해 공기를 실내 전체에서 빨아들이고 깨끗하게 정화해준다는 것이 핵심이었다. “이걸 설치하면 공기청정기 여러 대가 필요 없다는 거죠?” 한 중년 남성의 질문에 그 사원은 모델하우스 한쪽 벽에 붙어있는 에어원의 콘솔을 조작하며 숙달된 말투로 대답했다. “네, 그렇습니다. 모든 방에 공기청정기를 설치할 필요없이 에어원 하나만 있으면 집안 공기는 한번에 관리할 수 있습니다.”

연일 계속되는 미세먼지 비상 상황에서도 일산 킨텍스는 맑은 공기에 대한 희망으로 가득 찼다. 에어테이머를 목에 걸면 내 코앞의 공기를 다스릴 수 있고, 포그머신을 마당에 설치하면 몇 사람이 같이 마실 분량의 공기를 얻을 수 있고, 에어원 시스템이 있으면 손가락 클릭 한 번만으로도 온 집안 공기를 지킬 수 있을 것 같았다. 킨텍스에 총망라된 공기 기술은 이 땅에서 공기를 호흡하는 사람, 즉 살아 있는 모든 사람의 공기 수요를 충족하겠다는 포부를 숨기지 않았다. 에어테이머 전시 부스에서 마주친 엄마와 아들처럼 공기 정화 제품을 직접 사서 쓰려는 개인 소비자도 있었고, 건설사와 지자체 관계자, 학교, 유치원, 어린이집, 요양원 시설 담당자도 있었다. 내가 마실 공기를 직접 관리하려는 사람들과 요즘 들어 ‘미세먼지 취약계층’으로 불리게 된 사람들을 위한 공기 주머니를 설치해야 하는 관계자들이 모두 공기 기술의 고객이었다.

사진: 코리아빌드

2019년의 공기 나쁜 두 날에 경기도 두 지역에서 펼쳐진 공기 기술은 우리가 오염된 공기의 공포에 대응하는 두 가지 자세를 보여준다. 한쪽에는 최첨단 공기청정 시스템으로 대표되는 공기 기술이 있다. 이 기술은 개인이든, 가족이든, 직원이든 구획 지어진 공간 안에 있는 몇몇 인간에게 지금 당장 숨쉴 만한 한 줌의 공기를 제공하려는 과학기술이다. 각자가 나름의 형편에 따라 숨쉴 만한 공간을 창출해서 두려움을 달랜다는 점에서 이것을 ‘각자도생의 공기 기술’이라고 부를 수 있다. 다른 한쪽에는 공기를 대한민국이라는 공동체를 구성하는 사람이면 누구나 향유하는 공공재로 보고, 그 질을 느리게나마 꾸준히 관리하려는 공기 기술이 있다. 이 활동은 단번에 공기를 살 만한 정도로 만들지는 못하지만 개인의 형편에 상관없이 누구에게나 공통적으로 해당되는 공기의 조건을 개선하려고 시도한다는 점에서 ‘공동체의 공기 기술’이라 할 수 있다. 2019년 한국의 공기풍경에는 공기에 대한 상반된 자세들과 그것을 구현하는 상이한 기술들이 뒤섞여 있다.[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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